영화는 인간의 깊은 내면과 사회적 구조를 비추는 강력한 거울이다. 특히 실존주의, 인간의 죄와 고통 같은 주제를 다루는 작품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철학적 성찰로 이어진다. 데이비드 핀처의 세븐 (Se7en, 1995)과 드니 빌뇌브의 그을린 사랑 (Incendies, 2010)은 각각 범죄 스릴러와 전쟁 드라마라는 장르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결국 인간의 본성과 죄의 구조, 존재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이 두 영화는 관객을 무력하게 만들며, 동시에 깊은 성찰 속으로 끌어들인다.
세븐 (Se7en, 1995) - 인간 죄악에 대한 무력한 응시
세븐은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대표작으로, '7가지 대죄'를 주제로 한 연쇄살인을 추적하는 두 형사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은퇴를 앞둔 냉철한 형사 서머싯과 젊고 충동적인 밀스 형사는 도시 곳곳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살인을 추적하며, 점차 그들이 마주해야 할 것이 단순한 범인이 아닌 인간 본성의 어두운 그림자임을 깨닫는다. 영화는 시종일관 어둡고 습기 찬 도시를 배경으로 하며, 희망조차 스며들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를 끌어간다. 세븐이 다루는 주제는 단순한 범죄 해결이 아니다. 범인은 7가지 대죄(탐식, 탐욕, 나태, 분노, 교만, 질투, 색욕)를 상징하는 방식으로 살인을 저지르며, 자신을 인간 사회의 타락에 대한 심판자로 자처한다. 이러한 범인의 동기는 광기와 이데올로기가 결합된 무서운 실존주의적 질문을 내포한다. '이 세계는 타락했다. 타락한 이 세계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단지 형사들만의 것이 아니라, 관객에게도 날카롭게 꽂힌다. 마지막 반전에서 드러나는 '질투'와 '분노'의 맞대결은 비극 그 자체다. 이 장면은 단순한 플롯상의 충격을 넘어, 관객이 감당할 수 없는 윤리적 딜레마를 만들어낸다. 정의를 위해 분노한 자가 결국 살인마의 시나리오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아이러니는, 현대인의 도덕감이 얼마나 쉽게 조작되고 붕괴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핀처는 이 영화에서 절제된 화면, 차가운 색감, 그리고 최소화된 음악으로 인간 존재의 무력함과 비극을 더욱 극대화한다.
그을린 사랑 (Incendies, 2010) - 고통의 대물림과 원죄적 구조
드니 빌뇌브 감독의 그을린 사랑은 중동 내전의 참상을 배경으로, 한 가족의 과거와 정체성을 추적하는 영화다. 캐나다에 사는 쌍둥이 남매는 어머니 나왈의 유언에 따라 중동으로 향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존재가 전쟁과 고통, 복수의 고리에 얽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며 나왈의 삶을 따라가고, 결국 그녀가 겪은 고통의 무게가 상상 이상이었음을 드러낸다. 이 작품은 단순한 가족극이 아니다. 개인의 삶이 어떻게 사회와 역사, 폭력의 구조 속에 짓밟히고, 다시 후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준다. 나왈은 종교적, 정치적 갈등 속에서 자신의 아이를 잃고, 성폭행을 당하고, 결국 자식에게 진실을 밝히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그녀의 아이들은 그 진실을 추적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과 태어난 이유, 존재의 의미를 다시 정의해야만 한다. 영화는 끝내 묻는다. '우리는 누구이며, 왜 태어났는가?' 그리고 '우리가 받은 고통은 누구의 죄인가?' 이 질문은 단지 영화 속 인물들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관객도 함께 그 물음 앞에 서게 되며, 답을 찾기보다는 고통 자체를 응시하게 된다. 빌뇌브 감독은 잔인하거나 선정적인 장면 없이도, 오히려 절제된 묘사와 서늘한 분위기로 깊은 트라우마를 재현한다. 전쟁이 만든 인간 파괴의 연쇄는 극단적으로 보여지지만, 실제 세계에서는 이보다 더 참혹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두 영화의 주제 비교와 연출 방식
세븐과 그을린 사랑은 모두 인간 고통의 근원을 추적하는 데 집중한다. 전자는 현대 도시의 도덕적 붕괴와 인간 본성의 타락에 초점을 맞추고, 후자는 역사와 전쟁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조명한다. 한 영화는 범죄 스릴러이고, 다른 영화는 전쟁 드라마지만, 두 작품 모두 궁극적으로 인간이 선택할 수 없는 고통의 구조에 묶여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연출 방식에서도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핀처는 날카롭고 냉정한 시선으로, 범죄 장면을 철저히 계산된 화면 구성과 어두운 미장센으로 묘사한다. 반면 빌뇌브는 시간과 공간을 교차하며 인물의 심리와 정체성에 천천히 접근하고, 감정을 억누른 채 관객이 스스로 해석할 수 있도록 여백을 남긴다. 두 감독 모두 고통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그 여운과 충격을 통해 인간 본성의 심연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두 영화는 ‘실존’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만든다. 인간이 자신의 환경, 과거, 사회 구조 속에서 얼마나 무력하며, 그 속에서도 어떤 선택을 통해 의미를 찾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관객은 영화를 보는 내내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고, 마지막 장면이 끝난 후에도 그 울림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이 두 영화가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철학적 텍스트로 여겨지는 이유다.
마치고 나면 묻게 된다. '우리는 이 세계 속에서 어떤 존재인가?' 세븐이 도시 속 죄의 구조를 통해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고발했다면, 그을린 사랑은 전쟁이라는 거대한 파괴 기계 속에서 개인이 얼마나 비극적으로 소외되는지를 보여줬다. 두 작품 모두 인간 고통의 기원을 추적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존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질문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다.
영화감상후기
《세븐》과 《그을린 사랑》은 내게 단순히 뛰어난 영화로 기억되지 않는다. 이 두 편은 ‘인간 존재’에 대한 가장 깊고도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작품들이며, 영화를 보는 동안과 보고 난 후의 내 삶에 오래도록 그림자를 드리운 경험이었다. 두 영화 모두 각각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고통을 들여다보지만, 그 끝에서 마주하게 되는 침묵과 허무, 그리고 잔혹한 진실은 닮아 있다.
《세븐》을 처음 봤을 때 느낀 감정은 말 그대로 ‘무력감’이었다. 시종일관 흐린 도시의 풍경, 지독하게 침착한 범인의 계획, 정의가 도달하지 못하는 시스템 속에서 결국 분노로 무너지는 인간. 밀스 형사가 마지막에 저지른 선택은 그가 인간이기에 내린 결정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선택은 범인의 의도대로 움직인 것이었다. 이 지점에서 나는 나 자신에게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라도 다르지 않았을까? 고통과 정의, 분노와 도덕 사이에서 과연 나는 끝까지 인간일 수 있을까? 핀처는 이 모든 감정을 정제된 스타일과 계산된 연출로 차갑게 밀어붙인다. 그래서 더 아프다.
반면 《그을린 사랑》은 정서적으로 더 오래 남는 영화다. 처음엔 단순한 ‘과거 추적’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점차 전쟁과 종교, 여성의 삶과 같은 복잡한 주제를 겹겹이 쌓아가며 확장될 때, 나는 점점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스크린을 응시하게 됐다. 영화의 후반부, 그 참혹한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이건 영화일 뿐이야'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키기에도 늦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감정을 함부로 자극하지 않는다. 오히려 담백한 톤으로 이야기의 무게를 관객에게 통째로 건네는데, 이게 더 깊숙이 박힌다. 영화가 끝나고도 며칠 동안 나왈의 얼굴, 그 유언장의 한 문장이 계속 떠올랐다.
두 작품은 장르도 다르고 접근 방식도 극단적으로 다르지만, 인간의 고통이 얼마나 정교하게 구조화되어 있고, 얼마나 쉽게 개인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공통적으로 말해준다. 《세븐》이 도심 속 죄악의 시스템을 응시한다면, 《그을린 사랑》은 역사와 사회가 어떻게 한 인간의 삶을 짓밟는지를 드러낸다. 그리고 이 둘의 교집합은 '실존'이다. 인간은 고통 속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내가 이 두 영화를 다시 보고 또 보는 이유는, 그 질문에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