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라리스(Solaris, 2002)’는 단순한 SF 영화가 아니다. 이 작품은 인간이 타자와 어떻게 관계를 맺고, 기억이 어떻게 정체성을 구성하며, 진정한 존재란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심오한 철학적 질문의 총체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원작 영화(1972, 타르콥스키)와 소설(스타니스와프 렘)을 기반으로 하되, 보다 미니멀하고 내면 중심적인 방식으로 서사를 전개한다. 이는 21세기 관객에게 맞춘 현대적 리메이크의 모범이라 평가받는다. 영화는 기억이 만들어낸 존재와 그 존재에 대한 감정이 얼마나 실제와 다른가를 끊임없이 묻는다.
줄거리와 주요 등장인물의 정체성 문제
주인공 크리스 켈빈은 심리학자로, 깊은 상실과 무기력 속에 살아간다. 어느 날 그는 실종된 친구이자 동료 과학자 지바리안을 찾기 위해 우주정거장 ‘솔라리스’로 향한다. 이 정거장은 인식할 수 없는 외계 행성 ‘솔라리스’의 궤도에 떠 있고, 그곳에서 연구원들이 기이한 현상을 겪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과거에 잊으려 했던 사람들의 형상을 눈앞에서 다시 마주한다. 그들은 죽었지만, 다시 살아 돌아온 듯하며, 기억 속 모습과 감정까지도 완벽히 재현되어 있다.
크리스는 이곳에서 이미 사망한 자신의 아내 ‘레아’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녀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던 인물이며, 크리스는 오랜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던 중이었다. 이 ‘레아’는 그가 가진 기억을 바탕으로 형성된 존재로, 실제 인간과 거의 다르지 않다. 크리스는 처음엔 경계하지만, 점차 그녀에게 마음을 열고 다시 사랑을 느낀다. 이때부터 영화는 ‘이 존재가 실제인가?’ 혹은 ‘기억으로 만들어진 존재라도 사랑할 수 있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정거장의 다른 연구원들, 스노우와 고든은 서로 다른 태도를 보인다. 고든은 이 ‘손님들’을 제거해야 할 실험적 오류로 보고, 스노우는 그 자체를 받아들이려 한다. 이들은 인간이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영역에 다가섰을 때 어떤 윤리적, 존재론적 태도를 취하게 되는지를 대변한다. 모든 인물은 타자성과 자아, 기억과 실존이라는 복잡한 철학 구조 안에서 상징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감독의 연출 스타일과 원작과의 차별점
스티븐 소더버그는 솔라리스를 단순한 리메이크가 아닌, 심리적 탐구의 공간으로 재창조한다. 그는 감정의 밀도와 인간 내면의 정서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며, 외계 세계보다는 인간 내부 세계를 중심에 둔다. 우주의 압도적인 이미지보다 침묵, 빛의 변화, 인물 간의 정적인 대화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스타일이 특징이다. 이는 기존의 SF 영화와는 매우 다른 접근이다.
원작 영화인 타르콥스키의 ‘솔라리스(1972)’는 러시아적 정서와 철학적 깊이로 고전적인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타르콥스키는 영상미와 상징주의를 통해 우주의 고독과 인간 실존의 본질을 탐색했다. 반면 소더버그는 더 미니멀한 대사와 정제된 내면 연기를 중심으로, 철학을 보다 직관적으로 관객에게 전달한다. 그는 감정과 윤리, 기억의 신뢰성을 현대적 리듬으로 압축한다.
또한 원작은 과학철학의 비판에 가까운 반면, 리메이크는 감정 철학에 집중한다. 원작에서는 솔라리스 행성이 인간의 탐구와 소통 욕망에 반응하지 않는 ‘타자’로 묘사된다면, 리메이크는 그 타자에 대한 감정의 연결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다. 그 결과 소더버그의 ‘솔라리스’는 철학적 개념을 감각과 서사로 옮기는 데 성공한 작품으로 남는다.
철학적 분석 – 기억, 타자, 실존의 흔들림
‘솔라리스’는 다양한 철학 사조의 교차점에 서 있는 작품이다. 가장 중심이 되는 주제는 **‘기억의 실재성’**과 **‘타자와의 관계’**이다. 크리스는 죽은 아내를 기억 속 이미지로 다시 만나고, 그 존재를 사랑하게 된다. 이 존재는 살아 있는가, 아니면 그의 내면 욕망의 반영일 뿐인가? 이는 후설의 현상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인간은 세상을 인식할 때, 대상 그 자체보다 자신의 ‘의식’이 만들어낸 상을 통해 받아들이는데, 이 영화는 바로 그 의식이 만들어낸 타자와 감정적 관계를 묻는다.
장 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관점에서도 이 영화는 분석 가능하다. 인간은 자신의 선택과 경험으로 존재를 구성하며, 정해진 본질 없이 실존한다. 크리스는 과거의 죄책감과 현재의 감정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며, 그 선택이 곧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영화는 그가 만들어낸 현실이든, 실제 현실이든 상관없이, 결국 어떤 ‘실존’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묻는다.
라캉의 거울이론에 따르면, 타자는 자아를 구성하는 거울 역할을 한다. 크리스에게 레아는 자신의 욕망과 죄책감을 투사하는 대상이자, 자아의 결핍을 채우려는 상징이다. 그는 타자를 통해 자신을 이해하려 하지만, 이 타자가 더 이상 ‘타자’가 아닌, 자기 자신이 만들어낸 허상이라면, 그 관계는 과연 진실한가? 이 질문은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윤리적, 인식론적 물음이다.
결국 솔라리스 행성은 인간의 욕망을 그대로 재현해주는 무의식적 거울이다. 그것은 소통되지 않지만, 완벽히 ‘응답’한다. 이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타자와 진정한 대화를 할 수 있는가, 혹은 인간은 결국 자기 안에 갇혀 있는 존재인가라는 물음으로 귀결된다. 이 영화는 그러한 경계를 허물고, 관객에게 자아와 타자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만든다.
감상후기
‘솔라리스(Solaris, 2002)’는 고요하지만 강렬한 철학적 드라마다. 우주라는 설정을 빌려 인간 내면의 존재론적 질문을 탐색하고, 기억과 감정, 타자와 자아 사이의 경계를 재해석한다. 관객은 크리스의 선택을 통해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이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기억하는가?’, ‘기억이 만든 감정은 진짜인가?’ 이처럼 영화는 보이지 않는 질문을 우리 안에 남긴다. 그것이 바로 ‘솔라리스’가 오랜 시간 동안 회자되는 이유이자, 리메이크임에도 독립적인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영화 솔라리스(2002)를 본 뒤, 많은 관객들은 영화가 남기는 여운이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고 말한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SF나 우주 배경의 사랑 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영화는 관객 각자의 삶과 기억, 그리고 사랑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실제 관객 후기를 살펴보면 “이 영화는 내가 과거에 외면했던 감정들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다”, “내가 기억하는 사람은 정말 그 사람이었을까?” 같은 문장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관객들은 영화 속 ‘레아’라는 존재에 대해 많은 해석을 내놓았다. 그녀는 죽은 사람의 복제가 아니라, 크리스의 기억이 만들어낸 존재라는 점에서 관객 각자의 경험과 맞닿는 지점을 만든다. 한 관객은 “이별 후 오랜 시간이 지나도 누군가를 떠올릴 때, 그 기억 속 사람은 실제보다 더 이상화된 이미지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감정의 재현은 단순한 SF 설정을 넘어 감정의 본질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솔라리스 후기 중 가장 인상 깊은 공통점은 ‘침묵’과 ‘정적’의 활용이다. 영화 속 많은 장면에서 인물은 말을 하지 않고도 감정을 전달한다. 이는 관객들에게 강한 몰입감을 주며, “오히려 말이 없어서 더 많이 느껴졌다”는 후기가 많았다. 이런 방식은 빠른 전개와 자극에 익숙한 관객에겐 낯설 수 있지만, 천천히 곱씹을수록 더 큰 감정적 파장을 가져다준다.
또한, 이 영화는 ‘기억이 만든 존재도 진짜로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여기에 대해 어떤 관객은 “실제 존재가 아니어도 내가 느끼는 감정은 진짜였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관객은 “기억 속 누군가를 이상화하며 그리워하는 건 결국 현실을 도피하는 것일 수도 있다”며 비판적인 시선을 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솔라리스는 단일 해석을 허용하지 않으며, 관객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다른 감상 경험을 제공한다.
결국 솔라리스는 기억과 감정, 존재에 대한 깊은 철학적 사유를 자극하는 영화로, 단순히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영화라는 평을 받고 있다. 관객들은 그것이 사랑이든 상실이든, 자신이 가진 기억의 실체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고, 그 안에서 감정의 진정성과 자아의 불안정성까지 마주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영화가 끝나도 마음속에서 끝나지 않는 영화. 그것이 바로 ‘솔라리스’라는 작품이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이다.